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까지 오리지널 캐스팅이 그대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OTT로 부랴부랴 챙겨 봤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이 글에서는 제가 느낀 아쉬움을 가감 없이 써보려 합니다.

20년 후의 런웨이, 캐릭터는 그대로였을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전작으로부터 정확히 20년이 흐른 시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설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런웨이' 잡지사가 처한 현실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쉽게 말해 종이 매체 중심의 산업이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한때 패션계를 호령하던 잡지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출처: 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요 잡지들의 광고 수익은 201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런웨이의 위기라는 설정이 현실과 꽤 맞닿아 있다고 느낀 이유입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당혹스러웠던 건 미란다가 20년 전 자신의 비서였던 앤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처음엔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되돌아보면 미란다라는 인물이 수천 명의 스태프를 거쳐 온 편집장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 설정을 통해 두 인물이 만들어야 할 긴장감이 초반부에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앤디의 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작에서 저널리스트로 독립해 성장 서사를 완결 지었던 인물이, 이번 편에서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해고를 당한 뒤 SNS 바이럴을 계기로 런웨이에 다시 꽂히는 구조가 됩니다. 이 서사적 리셋(narrative reset), 즉 캐릭터가 이전 편에서 쌓아온 성장을 초기화하고 새로운 상황에 다시 놓이는 전개 방식은 속편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법이지만, 이번 경우엔 개인적으로 납득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 런웨이의 디지털 전환기 위기 — 시대적 배경으로서 설득력 있음
- 미란다의 기억 상실 설정 — 자연스럽지만 케미스트리 형성을 방해
- 앤디의 서사 리셋 — 전작 성장 서사와의 연속성 단절
미란다와 앤디의 케미스트리, 이번엔 어땠나?
1편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미란다와 앤디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었습니다. 권위적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사와, 그 밑에서 치이면서도 버텨내는 신입 사이의 역학 관계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갔죠. 이번 편에서도 제가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바로 그 케미스트리였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초반 40분가량은 두 사람이 거의 따로 노는 느낌이었습니다.
캐릭터 다이내믹스(Character Dynamics)란 두 인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성격과 욕망이 충돌하고 변화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1편에서 미란다와 앤디의 관계가 강력했던 건 두 사람의 욕망이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편에서 미란다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밀려나는 인물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묘하게 방어적이고 애매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강한 캐릭터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그 흔들림 안에서도 뚜렷한 욕망이 느껴져야 몰입이 됩니다.
에밀리 블런트의 에밀리 캐릭터는 특히 아쉬웠습니다. 전작에서 야심차고 당당했던 인물이 이번 편에서 보여주는 일부 행보는, 제가 보기엔 구시대적인 캐릭터 전개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루시 리우와 레이디 가가의 합류는 분명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레이디 가가가 본인 역할로 등장하는 장면은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깨어 있었던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카메오 퍼포먼스(cameo performance), 즉 실제 유명인이 극 중에 자기 자신으로 등장하는 방식은 극적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습니다만, 그것이 영화 전체의 케미스트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 제작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편에서 실제 패션 업계의 협력이 전작보다 훨씬 원활하게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화면 속 의상과 미장센의 완성도는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출처: BFI Sight and Sound에서도 패션 영화의 미장센이 내러티브 몰입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분석해온 바 있는데, 이번 편은 시각적 완성도와 서사적 완성도 사이의 간극이 전작보다 훨씬 컸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총평: C등급이라고 쓰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감상은 "나쁘지 않은데, 그렇다고 잘 만든 것도 아니다"였습니다. 오피스 코미디 드라마로서 기본적인 속도감은 살아 있고, 상영 시간 1시간 58분이 크게 늘어지지는 않습니다. 결말도 무난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서사 구조를 분석해보면, 런웨이 소속 브랜드의 노동 착취 문제라는 갈등 요소가 중반부에 등장하는데, 이 플롯 포인트(plot point), 즉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핵심 사건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주변부 에피소드들과 산발적으로 뒤섞입니다. 그 결과 중반부에서 이야기의 긴장감이 크게 떨어지고, 저는 실제로 화면을 보면서도 "지금 이 장면이 왜 여기 들어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에피소딕 구성(episodic structure), 즉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방식은 시리즈물에서는 유효하지만 영화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1편과 비교하자면, 저는 1편도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앤디의 친구들과 남자친구가 보여준 비상식적인 반응, 그리고 앤디가 그들에게 굴복해 사과하는 장면은 시리즈 전체에서 제가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걷어낸다면 1편은 캐릭터와 서사가 매우 잘 맞물린 영화입니다. 그 기준에서 2편을 보면, 핵심 캐릭터들의 매력이 전반적으로 희석된 느낌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가볍게 OTT에서 시간을 보내는 용도라면 충분히 볼 만합니다. 하지만 1편이 주었던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주인공의 성장과 선택을 통해 관객이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경험을 기대한다면, 이번 편에서는 그 감각을 거의 느끼기 어렵습니다. 제 개인 평은 C등급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1편을 안 봐도 이해가 될까요?
A. 미란다가 앤디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정 덕분에 2편 자체만으로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에밀리나 나이젤 같은 조연 캐릭터들의 배경을 모르면 감정선이 절반만 전달될 수 있습니다. 1편을 먼저 보신다면 훨씬 풍성하게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레이디 가가 출연 분량은 얼마나 되나요?
A. 주연급 분량은 아니고 본인 역할로 등장하는 카메오 퍼포먼스에 가깝습니다. 분량 자체는 길지 않지만, 장면의 임팩트가 상당해서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로 꼽힐 만합니다. 존재감 면에서는 분명히 제 몫을 합니다.
Q. 2편이 1편보다 재밌다는 평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그런 의견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화려한 패션 볼거리나 가벼운 오피스 코미디로서의 완성도는 2편이 나은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다이내믹스와 서사적 카타르시스 측면에서는 1편이 분명히 앞선다고 봅니다.
Q. 12세 관람가인데, 가족이 함께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등급상으로는 문제없고, 직장 내 권력 관계나 패션 산업의 현실을 다루는 내용이라 자극적인 장면은 없습니다. 다만 직장 생활 경험이 없는 어린 관객에게는 이야기의 재미가 절반 이하로 전달될 수 있어서, 성인 가족과 함께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결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20년 만의 재결합이라는 문화적 상징성으로 보면 분명히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디지털 전환기 속 잡지사의 위기, 패션 산업의 노동 문제 같은 시대적 화두를 끌어안으려 한 시도도 가볍게 볼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가 서사 안에서 하나로 묶이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지면서, 1편이 가졌던 명확한 긴장감과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재현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고 봅니다.
OTT에서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내는 용도로는 충분합니다. 다만 1편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분이라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보시는 편이 오히려 덜 실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오히려 1편을 다시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게 이 속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