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출, 자연의 시선, 타쿠미)

by 몰괜자 2026. 8. 21.

주말에 별 생각 없이 OTT를 뒤지다가 오래 찜해두고 미뤄온 영화를 드디어 틀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였는데, 잔잔한 아트하우스 영화겠거니 하고 소파에 느슨하게 기댔다가 허리를 세우게 됐습니다. 주민 설명회 장면에서부터 이미 예상을 빗나갔고, 엔딩은 제가 한동안 화면 앞에서 멍하니 있게 만들었습니다. 시각적 상징과 서사 구조를 꼼꼼히 뜯어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영화 &lt;악은 존재하지 않는다&gt;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마구치의 연출: 일상을 서스펜스로 끌어올리는 방식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느꼈던 그 결대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느리고 섬세하되, 잔잔한 감독. 그런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작부터 다른 질감이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냥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그 장면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 생활적인 행위가 이 정도의 긴장감을 품을 수 있다는 게 낯설었습니다.

이 연출의 핵심은 시점 숏(Point-of-View Shot)의 변형된 사용에 있습니다. 시점 숏이란 특정 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카메라를 배치하는 기법인데, 하마구치는 관객에게 인물의 시점인 것처럼 믿게 한 뒤 실제로는 그 인물이 화면 안에 없는 방식으로 편집합니다. 인간의 시선처럼 시작해서 결국 그 어떤 인간의 것도 아닌 시선으로 끝나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의식하고 다시 되감아 봤을 때, 오싹함이 제대로 올라왔습니다.

로우 앵글 숏(Low Angle Shot)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로우 앵글 숏이란 카메라를 낮은 위치에서 위를 향해 찍는 방식으로, 보통은 피사체를 크고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그 효과는 관객의 위치를 숲 바닥 어딘가, 즉 풀이나 곤충의 눈높이로 끌어내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불편한 감각인데, 그 불편함이 정확히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목이 숨긴 4단계 구조

영화 제목 'Evil Does Not Exist'는 단어 하나씩 순서대로 제시됩니다. 'Evil'이 먼저 등장하며 악의 존재를 긍정하고, 이어지는 세 단어가 차례로 그것을 부정하는 4단계 구조입니다. 제목 자체가 논증의 형식을 띠는 셈인데, 여기서 사용된 색상 배치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파란색과 빨간색(주황색)이 교차하는데, 이는 영화 후반부 두 핵심 인물인 하나와 타쿠미를 각각 상징하며 사건의 복선으로 기능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디자인 요소로 넘어갔는데, 엔딩을 보고 나서 다시 제목 시퀀스를 떠올리니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

이 구조는 내러티브 프레이밍(Narrative Framing)에 해당합니다. 내러티브 프레이밍이란 작품의 외형적 장치가 관객의 해석 방향 자체를 미리 설정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영화 처음과 끝에 같은 제목을 배치함으로써 관객이 상영 내내 "이 제목이 무슨 뜻인지"를 추적하게 만드는 구조인데, 제가 직접 그 상태로 봐보니 이 방식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목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검증하고 있었습니다.

  • 시점 숏 변형: 인간 시선처럼 시작해 어느 존재의 것도 아닌 시선으로 귀결
  • 로우 앵글 숏: 관객의 위치를 자연물(동식물)의 눈높이로 강제 배치
  • 내러티브 프레이밍: 제목 4단계 구조로 관객의 해석 방향 사전 설정
  • 색상 복선: 파란색(하나)·빨간색(타쿠미)으로 결말의 충돌 암시
요약: 하마구치는 시점 숏 변형과 로우 앵글, 제목의 4단계 내러티브 프레이밍을 통해 관객을 인간 바깥의 시선으로 밀어넣는다.

 

타쿠미의 행동: 자연의 대행인가, 서사의 한계인가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인물은 주인공 타쿠미입니다. 조연 타카시가 자신의 배경과 감정을 비교적 충분히 설명하는 것과 달리, 타쿠미는 내면이 거의 설명되지 않습니다. 왜 이 마을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화는 거의 침묵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과묵한 인물이구나 싶었는데, 결말까지 보고 나서는 이 침묵 자체가 설계였다는 걸 납득했습니다.

타쿠미는 자연의 대행자(Agent of Nature)로 읽힙니다. 자연의 대행자란 개인의 감정이나 윤리 판단이 아닌 자연의 질서를 수행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개념인데, 그가 글램핑 개발에 개입하는 방식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개인적 복수나 분노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해석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유형의 인물은 설명이 많으면 오히려 힘을 잃습니다.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자연의 속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타쿠미가 딸을 안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앞서 등장한 사슴 장면과 겹칩니다. 극 중 "사슴이 어디로 가겠냐"는 대사는 이 장면에 대한 예고처럼 작동하며, 나무의 해체로 시작한 영화가 인간의 죽음으로 수렴하는 구조는 자연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봉합합니다. 나무, 사슴, 인간이 결국 동일한 소멸의 회로 안에 있다는 이 논리는 영화적으로는 완결성이 높습니다.

주제적 야심과 서사적 개연성 사이

다만 저는 여기서 솔직하게 한 가지 아쉬움을 적어두고 싶습니다. 타쿠미의 행동을 '자연의 대행'이라는 관념적 상징으로만 처리함으로써, 영화가 전반부에 공들여 쌓아온 현실적 갈등 구조가 결말에서 급격히 휘발됩니다. 글램핑 개발을 둘러싼 마을 주민과 도시 자본의 충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 인물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결말에서 자연의 상징 아래 묻혀버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서사적 개연성(Narrative Plausibility)이란 극의 사건과 인물 행동이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인과의 고리로 연결되는 정도를 말합니다. 이 영화는 이 개연성보다 은유와 상징을 의도적으로 우선시하는데, 그 결과 주제적 야심은 훌륭하지만 정서적 착지가 다소 흐릿해집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칸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것은 (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공인한 결과이지만, 저처럼 현실 갈등 구조에 몰입했다가 결말에서 방향을 잃은 관객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모호함 자체가 감독의 의도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음악 아티스트 에이코와의 협업 과정에서 출발했으며 처음부터 이미지와 감각 중심의 작업을 목표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IMDb, Evil Does Not Exist). 그렇다면 서사적 설득력의 공백은 단점이 아니라 설계일 수 있습니다. 저도 두 번째 감상에서는 그 공백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요약: 타쿠미는 자연의 대행자로서 설득력 있게 설계됐지만, 상징 우선 구조는 전반부 현실 갈등의 서사적 개연성을 약화시키는 양날의 선택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말에서 타쿠미는 왜 그런 행동을 한 건가요?

A. 영화는 타쿠미의 내면을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복수나 분노보다는 자연의 질서를 침범한 인간을 제지하는 자연의 대행자로 해석하는 시각이 설득력 있습니다. 다만 감독 스스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마다 다른 독해가 가능하도록 열어둔 구조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Q. 하마구치 감독을 처음 접하는데, 이 영화부터 봐도 괜찮을까요?

A. 가능하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나 〈우연과 상상〉을 먼저 본 뒤 접근하면 하마구치 특유의 대화 연출과 시점 숏 변형 방식을 더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스타일이 더 응축되고 극단화된 작품에 가깝기 때문에, 맥락 없이 보면 결말에서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Q. 영화 제목이 Evil Does Not Exist인데, 결국 악이 없다는 뜻인가요?

A. 두 가지 해석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현시점에 악이 부재한다는 상황적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질서 안에서는 인간이 규정하는 '악'이라는 도덕적 범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의미입니다. 감독은 제목을 영화 처음과 끝에 반복 배치해 관객이 이 두 해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도록 유도합니다.

 

Q. 로우 앵글 숏이 이 영화에서 왜 중요한가요?

A. 일반적으로 로우 앵글 숏은 피사체를 위압적으로 표현하는 데 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순간에 반복 등장하며, 관객의 위치를 숲바닥 즉 풀이나 동물의 눈높이로 강제 이동시킵니다. 인간 중심적 도덕 판단이 아닌 자연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하는 감독의 핵심 미학 장치입니다.

 

결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작품입니다. 시점 숏 변형과 로우 앵글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시선, 4단계 내러티브 프레이밍으로 구성된 제목 구조, 타쿠미라는 설명 없는 인물이 품은 상징성까지, 분석하면 할수록 층위가 두터운 영화입니다.

다만 저는 결말의 서사적 개연성이 다소 희생된 부분은 솔직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주제적 야심은 높이 사지만, 전반부의 현실 갈등이 결말의 상징 앞에서 너무 빠르게 증발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번보다 두 번 봤을 때 더 잘 들어옵니다. 첫 감상에서 정서적으로 충돌한 지점을 두 번째에는 구조로 읽게 되기 때문입니다. OTT에서 접근 가능한 지금, 한 번 보고 결말에서 멈췄다면 다시 틀어볼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AO1RZeyqRk&list=PLUpgTv3bu9rHWFdteoNvZs5T5LSrG6j6j&index=45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