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는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일부러 피했습니다. "난해하다",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린다"는 말이 많아서 극장보다는 집 소파에서 편하게 보는 게 낫겠다 싶었거든요. 최근 OTT에서 드디어 봤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어렵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불쾌하지 않았어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자전적 고백, 역사적 은유, 소년의 성장 서사가 겹겹이 쌓인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 제가 영화를 이해한 방식을 풀어보겠습니다.

감독의 유년 시절이 그대로 녹아든 자전적 요소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기 자신에게 쓴 편지구나"였습니다. 주인공 마히토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도쿄 대공습을 피해 시골 저택으로 피난 가는 설정은 감독 본인이 1944년부터 1947년까지 겪은 실제 경험과 거의 일치합니다. 어머니의 죽음, 군수 공장을 운영하며 전시 호황을 누렸던 아버지 — 이 모든 가족사가 스크린 위로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 속 아버지 슈의 묘사입니다. 그는 아들을 사랑하는 척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해도 기부금으로 해결하려 하고, 사라진 아내를 찾는 데도 실패합니다. 여기서 저는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부채 의식(debt consciousness) — 쉽게 말해 유복하게 자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방탕했던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 을 이 캐릭터를 통해 상징적으로 '처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키리코, 외가리 남자, 큰 할아버지 같은 주요 인물들이 실제 지브리 스튜디오 관계자들을 모델로 했다는 점입니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의 인터뷰에서 공개된 내용인데, 이는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작품 안에 기념하는 방식으로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픽사의 <업>처럼 말이죠. 이런 내부 정보를 몰라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지장은 없지만, 알고 보면 감독의 의도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 마히토의 시대적 배경(1944~1947년)은 미야자키 감독의 실제 피난 경험과 일치
- 아버지 슈는 감독 본인의 아버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투영된 인물
- 키리코, 큰 할아버지 등 조연 캐릭터들은 지브리 실제 관계자들이 모델
탑의 세계가 담은 일본 근현대사 은유
영화에서 가장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탑 안의 세계'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도 "이게 대체 뭔 소리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탑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을 일본 근현대사와 연결하면 갑자기 구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탑이 생겨난 경위에 대해 영화 속에는 두 가지 견해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조상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메이지 유신 직전 하늘에서 거대한 돌이 떨어져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란 1868년 일본이 서구의 압력에 의해 강제 개항하고 근대화 개혁을 단행한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견해는 결국 일본의 근대화가 외부의 충격(강제 개항, 불평등 조약)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탑 후반부에 등장하는 앵무새 군단과 앵무새 대왕은 어떻게 봐도 파시즘(Fascism)의 은유입니다. 파시즘이란 극단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일 히틀러, 일본 도조 히데키로 대표됩니다. 앵무새 대왕의 집회 장면이 나치 집회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그려진 건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탑이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이 파시즘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의 과오였음을 시사합니다(출처: 국립영화박물관 근현대 영화사 자료).
한편, 나츠코와 어머니는 같은 시대를 바라보는 상반된 두 시선을 대변합니다. 어머니가 남긴 메시지의 연도가 1937년 — 중일전쟁 발발 직전 — 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감독은 이 지점을 '아직 순수했던 일본'으로 설정한 것처럼 보이고, 나츠코는 반대로 군국주의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받아들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상징합니다. 제가 직접 두 캐릭터를 비교하며 봤을 때, 감독의 비판적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는 꽤 명확하게 느껴졌습니다.
죽음을 뿌리치고 삶을 선택하는 마히토의 성장 서사
자전적 요소나 역사 은유보다 제가 가장 크게 울컥했던 건 사실 이 세 번째 층위였습니다. 마히토는 영화 초반부터 사실 '죽고 싶은' 아이입니다. 공습 현장에서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어머니와 닮은 얼굴을 한 새 어머니 나츠코에 대한 양가감정(ambivalence) — 여기서 양가감정이란 동일한 대상에 대해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 이 모든 감정이 소년의 내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마히토가 탑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표면적으로는 나츠코를 구하러 가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죽은 어머니에게 다가가려는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감독이 판타지 세계관을 빌려 소년의 자기 파괴적 충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그래서 더욱 선명합니다. 큰 할아버지로부터 '세상의 평화를 가져올 계승자'로 지명받지만, 마히토는 이를 거절합니다. 거대한 사명보다 자신이 스스로 머리를 돌로 내리쳐 자해한 사소한 악행에 책임을 지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 "친구를 만들겠다"라고 선언하는 것 — 이게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향하던 아이가 결국 삶을 선택하는 순간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수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이 메시지를 반복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라"는 것.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 메시지의 가장 개인적이고 날것의 버전이라고 느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해외 애니메이션 작품 아카이브).
자주 묻는 질문
Q.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사전 지식 없이 봐도 이해되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자전적 배경이나 일본 근현대사를 모르면 탑의 세계 설정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히토라는 소년이 상처를 안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 서사 자체는 별도 지식 없이도 충분히 감동적으로 전달됩니다. 먼저 느낌으로 한 번, 배경 공부 후 다시 한 번 보는 방식을 저는 추천합니다.
Q. 앵무새 군단이 나치를 상징한다는 게 실제로 맞는 해석인가요?
A.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인터뷰마다 다른 이야기를 할 정도로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하는 작품이라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집회 장면의 시각적 연출, '비바 두체'를 연상시키는 구호 등 여러 요소가 파시즘 은유를 강하게 지지합니다. 감독의 반군국주의 성향을 고려하면 의도적인 묘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 마히토가 왜 스스로 머리를 돌로 쳤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A. 마히토는 새 학교에 적응하기 싫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해해 가해 사실을 꾸민 것으로 해석됩니다. 영화는 이 행동을 마히토 내면의 자기파괴적 충동, 즉 어머니를 잃은 죄책감과 삶에 대한 무기력감의 표현으로 그립니다. 결말에서 마히토가 이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핵심 지점입니다.
Q. 이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인가요?
A.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감독이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만든 작품으로, 제작 당시 사실상 마지막 장편으로 여겨졌습니다. 감독 스스로도 자신의 삶과 창작 인생을 총정리하는 의도를 담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때문에 자전적 요소가 이전 어떤 작품보다 짙게 배어 있습니다.
결론
다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건 결국 하나였습니다. 이 영화는 82세 노감독이 자신의 삶 전체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고백록이라는 것. 자전적 서사, 역사적 은유, 성장 서사라는 세 층위가 따로 놀지 않고 마히토라는 소년 한 명 안에 모두 압축되어 있습니다. 상징이 많아 중반부에서 흐름을 놓치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처음 보는 분들께는 분명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마히토가 "친구를 만들겠다"라고 말하는 그 한 마디는 묵직하게 남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이 작품들과 비교하며 보면 감독이 평생 반복해온 메시지가 얼마나 일관되게 이 영화 안에 담겨 있는지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_b6dipTBKQ&list=PLUpgTv3bu9rHWFdteoNvZs5T5LSrG6j6j&index=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