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한 마리도 안 나오는 영화 제목이 왜 '노 베어스'일까요. 저도 처음엔 그 질문 하나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거머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직접 출연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영화로 찍은 작품인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려한 연출도, 자극적인 장면도 없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더군요.

메타 영화로 읽는 '노 베어스' — 현실과 허구의 경계
'노 베어스'는 메타 영화(meta-film)입니다. 여기서 메타 영화란 영화가 영화 만드는 행위 자체를 소재로 삼아,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형식을 말합니다. 관객은 "지금 내가 보는 게 감독의 실제 상황인가, 아니면 연출된 장면인가"라는 질문을 영화 내내 던지게 됩니다. 저도 중반부쯤에 잠깐 재생을 멈추고 다시 앞 장면을 되돌려 봤을 정도였습니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 당국으로부터 출국 금지와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그는 국경 마을에 앉아 노트북으로 원격 촬영을 지휘합니다. 이 설정 자체가 이미 현실을 소재로 한 픽션이고, 픽션 속에 또 픽션이 겹치는 구조입니다. 다이어제시스(diegesis)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영화 속 세계와 영화 밖 현실 사이의 층위를 구분하는 서사학 용어입니다. '노 베어스'는 이 두 층위를 끊임없이 교란시키는 방식으로 관객의 감각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란 영화가 세계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두고, "억압적 환경이 오히려 예술적 밀도를 높인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열악한 환경이 독창성을 강제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자동으로 걸작을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파나히 감독의 경우엔 그 환경을 형식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걸작이 된 거라고 봅니다. 키스 신조차 검열받는 사회에서 인물의 감정을 시선과 침묵으로 전달하는 이란 영화 특유의 절제된 미학이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22년 파나히 감독에게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여했습니다(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사이트).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받은 현존 감독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거장을 앞에 두고 영화제 관계자가 경솔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씁쓸했습니다. 국제 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예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 메타 영화 형식: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스토리이자 형식이 되는 구조
- 다이어제시스 교란: 현실 층위와 픽션 층위를 반복적으로 뒤섞어 관객의 판단을 유보시킴
- 이란 영화의 절제 미학: 검열 환경이 강제한 시선과 침묵의 서사가 오히려 감정 밀도를 높임
- 파나히의 현실: 출국 금지·제작 금지 처분 속에서도 실제로 완성된 작품
창작 윤리를 묻는 카메라 — 거장의 자기 회의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화려한 연출이 아니었습니다. 감독이 마을 사람들의 갈등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그 갈등이 촬영 때문에 더 깊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삶을 담고 있는가, 삶을 소비하고 있는가."
파나히 감독은 이 영화 안에서 스스로를 방관자적 시선을 지닌 창작자로 위치시킵니다. 방관자적 시선이란, 타인의 고통이나 갈등을 피사체로 바라보는 창작자의 위치를 가리킵니다. 다큐멘터리 윤리학에서도 오래된 논쟁거리인데, 카메라를 든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가 기록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아카이브). 파나히는 이 질문을 관객에게 외주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먼저 들이밉니다. 그 점이 저한테는 가장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탄압받는 예술가를 다룬 영화라면 흔히 감독 자신을 순교자처럼 그리기 쉽습니다. "나는 이렇게 핍박받으면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선언 말입니다. 그런데 '노 베어스'에서 파나히는 그 반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자신이 예술 행위를 통해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균열을 만드는 존재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올라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독이 탄압을 받으니까 이 영화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오히려 작품을 좁게 읽는다고 봅니다. 탄압은 이 영화의 배경이지, 주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창작 윤리(creative ethics), 즉 창작자가 타인의 삶을 기록하거나 재현할 때 짊어져야 할 도덕적 책임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이란이 아닌 어느 나라의 어느 감독에게도 똑같이 유효한 질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노 베어스'에 실제로 곰이 나오나요?
A. 곰은 한 마리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목 'No Bears'는 마을 주민들이 숲에 곰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없다는 상황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제목입니다. 저도 처음엔 동물 다큐멘터리인 줄 알고 눌렀다가 전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Q. 이란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데 초보자도 볼 수 있나요?
A. "이란 영화는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노 베어스'는 생각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흡인력이 있습니다.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도 마을 사람들의 갈등과 감독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따라가지는 구조라, 예술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결말을 한 번에 소화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보고 나서 조금 여운을 두는 편이 좋습니다.
Q.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왜 직접 출연한 건가요?
A. 이란 당국의 제작 금지 처분 속에서 감독이 자신의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입니다. "감독이 직접 나오니까 다큐멘터리 아닌가"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 작품은 엄연히 극영화입니다.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메타 영화적 형식 자체가 감독의 핵심 전략이고, 그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바로 감독 본인의 출연이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Q. 어디서 볼 수 있나요? OTT 서비스에 있나요?
A. 저는 OTT를 통해 감상했는데, 서비스 제공 여부는 플랫폼마다, 또 시점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란 영화 특성상 대형 상업 스트리밍보다는 예술 영화 전문 플랫폼이나 VOD 서비스를 먼저 확인해 보시는 게 현실적입니다. 검색창에 '노 베어스 다시보기'나 'No Bears 2022'로 찾아보면 현재 제공 중인 플랫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노 베어스'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곱씹은 건 파나히 감독의 강인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강인한 사람이 카메라 뒤에서 끝없이 흔들리고 반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탄압받는 예술가를 영웅화하지 않고, 창작 행위가 지닌 윤리적 무게를 자기 자신에게 먼저 돌리는 태도. 그게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싶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란 영화가 낯설게 느껴지신다면, '노 베어스'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본 뒤 파나히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방향을 한번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절제된 화면 안에 얼마나 깊은 질문이 숨어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