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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멀고도 가까운> (고립, 상실, 애도)

by 몰괜자 2026. 9. 20.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발자국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멀고도 가까운》의 주인공 주노가 재개발 구역의 낡은 바(Bar)를 지키는 이유는 딱 하나, 죽은 연인이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설정 하나만으로 이미 영화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먹먹함이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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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멀고도 가까운>


고립 — 멈춰버린 공간이 말하는 것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배우의 연기나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재개발 구역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주노의 바, 그 공간 자체였습니다.

영화는 이 한정된 공간을 단순한 배경으로 쓰지 않습니다. 심리적 밀폐 공간(Enclosed Space)으로 활용하는데, 쉽게 말해 주인공의 억압된 내면을 물리적 장소로 가시화하는 연출 기법입니다. 주노가 가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 자리를 비우는 순간 그녀가 왔다가 그냥 돌아가버릴 것 같은 공포가 그를 붙잡고 있는 거죠.

임대료는 오르고 주변 건물은 하나둘 철거되는데 주노만 혼자 그 자리를 지킵니다. "찰나가 쌓여 세월이 된 것"이라는 그의 대사가 그냥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거든요. 어떤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게, 사실은 그 시간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감각 말입니다.

공간 연출이 이렇게 촘촘한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공간이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미장센(Mise-en-scène) —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요소가 서사적 의미를 갖도록 구성하는 방식 — 이 이 영화에서는 꽤 성실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요약: 주노의 바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고립된 심리를 가시화하는 미장센 장치로 영화의 핵심 서사를 이끈다.

 

상실 — 죽은 사람을 닮은 얼굴들

죽은 연인의 얼굴을 한 여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영화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연주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반면 주노는 오늘 하루를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고 합니다. 이 대비가 꽤 영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지갑 속에는 '희망 빌라' 퇴거 통지서가 들어 있었고, 얼마 뒤 형사가 찾아와 연주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주노를 둘러싼 수사 과정이 미스터리 장르의 긴장감을 만들지만, 저는 이 대목에서 오히려 장르적 해결보다 정서적 충격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이후 연주를 닮은 인물들이 반복해서 주노의 삶에 출몰합니다. 이걸 두고 "죽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보느냐"며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읽었습니다. 이건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실(Loss) 이후 인간의 지각이 얼마나 집요하게 잃어버린 대상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리얼리즘에 더 가깝다고 봤거든요. 여기서 상실이란 단순히 누군가를 잃는 것을 넘어, 그 존재와 함께 사라진 자기 자신의 일부를 애타게 붙드는 감각을 포함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보다 훨씬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조용한 밤에 혼자 봤는데, 연주가 마지막으로 찾았던 장소의 주인이 주노라는 설정에서 생각지 못한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 죽은 연인과 닮은 여자 '연주'의 등장 — 과거와 현재의 경계 붕괴
  • 지갑 속 퇴거 통지서 — 연주 역시 삶의 끄트머리에 있었던 인물
  • 반복되는 닮은 얼굴들 — 초자연이 아닌 심리적 집착의 시각화
  • 동석의 과거 회한 — 잡지 못한 인연을 품고 사는 또 다른 인간 군상
요약: 연주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장르적 장치이지만, 본질은 상실 이후 인간이 잃어버린 존재의 흔적을 얼마나 집요하게 추적하는지를 보여주는 심리 드라마다.

 

애도 — 마지막 장을 덮는다는 것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주노는 결국 깨닫습니다. 연주가 마지막으로 찾아든 장소의 주인으로서, 그녀를 추모하고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요. 이 지점이 이 영화가 단순한 멜로물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상실 이후 떠나간 대상을 마음에서 놓아주는 과정을 애도(Mourning)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애도란 슬픔을 억누르거나 빨리 잊는 게 아니라, 충분히 슬퍼하고 기억한 뒤 현재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는 심리적 회복 과정을 의미합니다. 프로이트가 1917년 논문 「애도와 우울증(Mourning and Melancholia)」에서 구분한 개념이기도 한데, 애도는 결국 상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에너지를 새로운 대상에 투자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출처: Freud Museum London).

주노가 10년을 버텨온 방식은 이 관점에서 보면 애도가 아닌 멜랑꼴리(Melancholia)에 가깝습니다. 멜랑꼴리란 상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그 대상과의 관계에 심리적으로 갇혀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영화는 이 두 개념의 차이를 주노의 행동 변화를 통해 보여주는 셈인데, 제가 직접 이 흐름을 따라가며 봤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 밖의 카타르시스가 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동석과 연주의 관계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행동 동기가 상징에 지나치게 기댄다는 점입니다. 인과관계보다 정서적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 "왜 저 인물이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넘어갑니다. 이런 부분을 답답하게 느끼는 시각도 충분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저도 두어 번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요약: 영화는 멜랑꼴리에서 애도로의 이행을 주노의 서사를 통해 보여주지만, 일부 인물의 행동 동기가 상징에 치우쳐 개연성이 흐릿해지는 한계도 있다.

 

새로운 시작 — 멈춘 바늘이 다시 돌 때

시간이 흐른 뒤, 연주를 닮은 최은영이라는 인물이 다시 가게에 나타납니다. 이 반복의 구조를 단순한 클리셰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주노가 이번엔 과거를 투영하는 대신 눈앞의 사람을 새로운 인연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자체가 달라져 있거든요. 그 변화가 대사 없이 태도와 눈빛으로만 전달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멈춰 있던 마음의 바늘이 다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깊은 한숨과 함께 묘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거창한 치유 서사가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시간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었거든요. 그게 더 솔직하게 느껴졌습니다.

배우 고은민은 이 작품이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모두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 영화는 상실한 사람을 향한 이야기라기보다, 상실 이후에도 계속 흘러가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는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상실 경험 이후 의미 재구성(Meaning Reconstruction) — 즉 상실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 — 이 장기적 심리 회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주노의 마지막 선택이 딱 이 과정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결말은 감성에만 기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 주노의 마지막 선택은 감성적 해피엔딩이 아니라, 의미 재구성을 통해 상실 이후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회복의 장면으로 읽힌다.

 

자주 묻는 질문

Q. 《멀고도 가까운》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제가 본 건 OTT를 통해서였습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예고편이 공개되어 있고, 국내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검색하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놓쳤더라도 온라인으로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Q. 미스터리 요소가 강한 영화인가요, 멜로가 강한 영화인가요?

A. 이 질문에 딱 하나의 답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장르적으로는 심리 미스터리 멜로드라마로 분류되는데, 제가 보기엔 미스터리는 서사를 끌고 가는 장치에 가깝고 본질은 상실과 애도를 다루는 멜로에 더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스릴러를 기대하고 보면 다소 심심할 수 있고, 잔잔한 감정선을 따라가고 싶은 분께는 잘 맞을 영화입니다.

 

Q. 영화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A. 완전히 닫힌 결말은 아닙니다. 주노가 새로운 인연 앞에 걸어 나가는 방향성은 분명하게 제시되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남겨집니다. 열린 결말을 답답하게 느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정도 여백이 오히려 영화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고 봤습니다.

 

Q. 연주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가요, 주노의 환상인가요?

A. 영화 안에서 연주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형사가 교통사고 사망 사실을 확인해 주고, 지갑과 퇴거 통지서 같은 물리적 흔적도 남깁니다. 다만 이후 닮은 인물들이 반복 등장하는 구조는 주노의 심리 상태를 은유하는 서사적 장치로 읽히는데, 이 경계를 모호하게 유지하는 게 영화의 의도로 보입니다.

 

결론

《멀고도 가까운》은 잘 만들어진 완벽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물 간 관계의 인과관계가 군데군데 느슨하고, 상징에 기대다가 서사적 설득력이 옅어지는 순간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저는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을 쉽게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애도와 멜랑꼴리의 차이, 멈춰버린 공간이 심리를 대변하는 방식, 상실 이후에도 흘러가야 하는 시간. 이 세 가지를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조용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고 봅니다. 밤에 혼자, 생각을 좀 가라앉히고 싶을 때 꺼내 보기에 딱 맞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WhDKbtMP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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