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장례식, 욕망, 필리프 신부)

by 몰괜자 2026. 8. 20.

이동진 평론가가 5점 만점을 준 프랑스 영화가 있습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미세리코르디아>입니다. 솔직히 처음 그 평점을 봤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알랭 기로디라는 이름 자체가 워낙 난해함과 동의어로 통하다 보니, 제가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금방 알게 됐습니다.

영화 &lt;미세리코르디아&gt;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장례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구조의 의미

일반적으로 프랑스 예술 영화라 하면 서사보다 형식이 앞서는 난해한 작품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도 그랬고요. 그런데 <미세리코르디아>는 달랐습니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해서 첫 장면부터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갔습니다.

영화는 순환 서사(circular narrative) 구조를 취합니다. 순환 서사란 작품의 시작점과 끝점이 동일한 사건이나 장면으로 맞물리는 방식을 뜻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장례식이 그 역할을 합니다. 처음에도 장례식, 마지막에도 장례식입니다. 단순한 형식적 대칭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틀 안에서 인간의 욕망이 꿈틀거린다는 감독의 세계관이 구조 자체에 박혀 있는 겁니다.

주인공 제롬이 작은 시골 마을에 눌러앉는 이유도 딱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영화 안에 내레이션도 없고, 인물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플래시백(flashback)도 없습니다. 플래시백이란 과거 장면을 삽입해 인물의 동기나 심리를 설명하는 서사 기법인데, 감독은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합니다. 그 덕분에 제롬이라는 인물은 끝까지 불투명하게 남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당황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살인 사건까지 일으키는 인물인데, 그의 내면을 도무지 꿰뚫을 수가 없었거든요.

공간적 설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롬이 욕망하는 왈테르의 집에 가려면 반드시 숲을 통과해야 합니다. 욕망과 자연이 공간적으로 맞닿아 있는 구조입니다. 감독이 욕망을 세상이 작동하는 섭리, 즉 자연의 일부로 본다는 시각이 화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요약: 장례식-장례식의 순환 서사 구조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죽음과 욕망을 한 덩어리로 보는 감독의 세계관 그 자체다.

 

버섯과 옷, 욕망을 읽는 두 가지 시각 언어

영화에서 상징(symbolism)이 남발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상징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이미지로 치환하는 표현 기법인데, 과하면 오히려 해석이 억지스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미세리코르디아>의 버섯과 옷은 달랐습니다. 제가 이 두 이미지를 처음 마주쳤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영화 전체를 꿰뚫는 핵심 언어였습니다.

버섯 장면은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제롬이 시체를 묻은 바로 그 땅에서 버섯이 돋아나고, 그는 그것을 태연하게 채취합니다. 죽음 위에서 피어나는 유기체라는 점에서 버섯은 성적 욕망의 은유이자 죽음과 생명이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압축하는 이미지로 기능합니다. 단번에 이해되는 상징은 아니지만, 한 번 읽히고 나면 그 밀도가 상당합니다.

옷의 쓰임새는 더 노골적입니다. 제롬은 죽은 장피에르의 옷을 입고, 왈테르의 속옷을 걸칩니다. 여기서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그 순서와 맥락입니다. 옷을 입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읽히거든요. 말로 다 하지 않아도 관객은 제롬이 누구를 얼마나 원하는지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제롬은 욕망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신부 필리프, 마르틴, 뱅상, 왈테르 모두가 욕망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 엿보는 자이면서 동시에 엿보이는 자로 반복 배치되어 욕망의 쌍방향성을 시각화합니다.
  • 뱅상-제롬-왈테르의 삼각 구도에서 욕망은 서로 엇갈리고 대칭되며, 겉으로는 밀어내지만 사실은 붙잡으려는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다층적 욕망 구도를 이렇게 조용하고 건조한 톤으로 풀어낸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대사 한 줄 없이도 캐릭터의 욕망이 선명하게 읽혔습니다.

요약: 버섯과 옷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제롬의 욕망 상태를 읽는 핵심 시각 언어이며, 말 없이도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필리프 신부가 이 영화를 순고한 러브스토리로 만드는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필리프 신부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인물의 시선으로 <미세리코르디아>를 다시 읽으면, 살인과 은폐가 중심이던 블랙코미디가 순고한 러브스토리로 탈바꿈합니다.

필리프는 자신이 제롬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접 고백합니다. 그리고 제롬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자리에 나타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렬한 욕망이 만들어낸 동선입니다. 제가 이 구조를 파악한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의 등장이 갑작스럽지 않고, 오히려 가장 논리적인 행동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영화 제목 '미세리코르디아(Misericordia)'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말로 '자비(mercy)'를 의미합니다(출처: CNRTL 프랑스어 어원 사전). 일반적으로 자비는 욕망과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고결한 덕목과 세속적 본능은 서로 충돌한다는 게 통념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등식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필리프의 자비는 그의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려 합니다. 사랑, 욕망, 자비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이 명제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핵심입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영화 비평계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주요 영화 기관에서도 그의 작품이 꾸준히 조명되는 이유는 바로 이 독창적인 시네마틱 언어(cinematic language) 때문입니다. 시네마틱 언어란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이미지, 공간, 인물 배치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 고유의 표현 방식을 뜻합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미세리코르디아>는 그 언어를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구사한 작품입니다.

다만 제가 한 가지 솜씨 있게 짚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비윤리적 행동이 '사랑과 자비'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 서사는 관객에 따라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지점에서 계속 마음이 엇갈렸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자체가 이 영화가 의도한 감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윤리적 당위성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볼 여지가 있거든요.

요약: 필리프 신부는 욕망에 가장 솔직한 인물이자 그 욕망이 자비로 이어지는 과정을 몸소 증명하는 캐릭터로, 영화의 철학적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세리코르디아, 알랭 기로디 다른 작품 안 봐도 이해할 수 있나요?

A.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전작을 알면 더 풍부하게 읽히는 건 사실이지만, <미세리코르디아>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스토리가 선명한 편에 속합니다. 제가 직접 전작 없이 처음 본 작품이 이것이었는데, 스토리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Q. 미세리코르디아 어디서 볼 수 있나요? OTT 서비스가 있나요?

A. 제가 처음 접한 경로는 B tv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개봉 프랑스 예술 영화는 극장 상영 후 일부 OTT나 IPTV를 통해 서비스되는 경우가 많은데, 플랫폼별 서비스 현황은 수시로 바뀌므로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Q. 영화 제목 미세리코르디아가 무슨 뜻인가요?

A. '미세리코르디아(Misericordia)'는 라틴어 계열의 단어로 '자비(mercy)'를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핵심 주제어로 기능합니다. 필리프 신부라는 캐릭터를 통해 욕망과 자비가 서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하는 방식이 영화의 핵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Q. 영화 내용이 선정적인가요? 보기 불편한 장면이 많나요?

A. 알랭 기로디 감독 특유의 파격적인 성적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전작들보다는 수위가 낮은 편이었지만, 성적 은유와 노출 장면이 있으므로 취향에 따라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묘사보다 상징과 함의로 풀어내는 비중이 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미세리코르디아>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렬했습니다. 난해할 거라 지레 겁먹었지만, 스토리는 끝까지 흡입력 있게 이어졌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버섯, 옷, 필리프 신부, 그 장례식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윤리적으로 모호한 지점이 있고, 욕망과 자비를 동일 선상에 놓는 시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것이 제 최종 판단입니다. 주말 밤, 잔잔하지만 보고 나서 뭔가가 남는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이 작품을 강력히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ojjhGRWpRY&list=PLUpgTv3bu9rHWFdteoNvZs5T5LSrG6j6j&index=21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