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리메이크라는 말에 반쯤 의심하며 틀었는데,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1973년 스티브 맥퀸 주연의 오리지널이 남긴 무게감이 워낙 크다 보니 2017년판 <빠삐용>이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는데, 찰리 헤냄과 라미 말렉이라는 조합이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기아나의 지옥 같은 교도소로 끌려간 빠삐용의 이야기는, 단순한 탈옥 액션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를 향해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탈옥 서사 — 집념이 만들어낸 처절한 드라마
1931년, 금고털이범 파피는 갱단과 거래하던 중 짝패에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무소' 교도소로 이송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압도당했던 건 이 교도소의 설정 자체였습니다. 빽빽한 열대우림과 상어 떼가 득실거리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형적 조건은, 탈옥을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도소 규칙도 가혹합니다. 첫 번째 탈옥 시도에는 2년 독방, 두 번째 시도에는 5년 독방이 부과되며, 그 이후에는 '악마의 섬(Île du Diable)'으로 이송되어 종신 복무가 기다립니다. 여기서 악마의 섬이란 기아나 앞바다의 실존 유형지로, 절벽과 조류로 둘러싸여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프랑스는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곳에 중범죄자와 정치범을 수용했으며, 드레퓌스 사건으로도 잘 알려진 역사적 장소입니다(출처: Britannica, Devil's Island).
파피는 위조범 드가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얽히면서 점차 탈출 계획을 구체화합니다. 해군 출신 수감자 셀리에르를 통해 배를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매춘부를 실어나르는 트럭 기사를 통해 해안까지의 이동 수단도 확보합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꼈던 건 '이 사람이 진짜 살아남을 사람처럼 움직인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감정보다 생존 본능이 앞서는 인물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탈옥을 시도했던 동료 로가 잡혀 끔찍하게 매질당한 채 숨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히 스릴러로 소비되길 거부한다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그럼에도 파피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트럭 기사의 밀고로 재체포되어 2년 독방에 갇히고, 말 한마디 금지된 지옥 같은 독방 생활 속에서 드가가 몰래 넣어준 코코넛 하나에 의지해 이성을 붙잡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코코넛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상징하는 오브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기아나 무소 교도소: 정글과 바다로 둘러싸인 실존 유형지로, 탈출 시 가혹한 형벌 부과
- 독방(solitary confinement): 말 한마디 금지, 식사 삭감, 장기 격리로 정신적 붕괴를 유도하는 극단적 처벌 방식
- 악마의 섬: 절벽과 강한 조류로 둘러싸인 최후의 유형지, 종신 복무 대상자 수용
- 드가와의 연대: 금전적 이해관계에서 시작된 관계가 생존을 위한 신뢰로 전환
우정과 자유 의지 — 악마의 섬에서 갈라진 두 선택
이 영화를 단순한 탈옥물이 아닌 인간 드라마로 기억하게 만드는 건 빠삐용과 드가의 관계입니다. 처음에 드가는 파피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감시가 덜한 병원 대신 강도 높은 현장 노동에 투입되고, 체력이 약한 드가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파피가 감싸줍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관계의 성격이 서서히 바뀝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서로의 약점을 목격하며 쌓아가는 신뢰가 가장 끈끈한 유형의 우정인데, 영화가 그 감정 변화를 억지스럽지 않게 포착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탈옥 시도는 더 정교합니다. 드가는 간수들의 술에 진정제(sedative)를 타는 역할을 맡습니다. 여기서 진정제란 중추신경계의 활동을 억제해 각성 수준을 낮추는 약물을 의미하는데, 영화는 이 장면을 치밀한 준비의 상징으로 활용합니다. 병원 감독관에게 추행당하던 소년 마트라를 영입하고, 셀리에르까지 병동에 합류시키면서 탈출 팀이 구성됩니다.
간신히 교도소를 빠져나온 일행이 받은 보트는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거대한 폭풍까지 겹칩니다. 이때 셀리에르가 무게를 줄여야 한다며 드가를 버리라고 요구하고, 결국 드가가 셀리에르를 살해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항해 경험이 있던 셀리에르를 잃은 대가는 혹독했고, 일행은 난파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라고 느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한 선택이 결국 생존 능력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니까요.
콜롬비아 원주민 마을에 도착한 이후, 드가는 그곳에 정착을 선택하고 파피는 다시 프랑스 본토로 향하려 합니다. 그러나 마을의 수녀가 간수들에게 신고하면서 마드레는 사망하고, 두 사람은 다시 체포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은 배신에 대한 분노보다, 믿었던 공간에서도 배신이 가능하다는 씁쓸함에 가까웠습니다.
5년의 혹독한 독방 생활 후, 파피는 악마의 섬에서 종신형을 받습니다. 이미 그곳에 정착한 드가가 파피를 맞이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드가는 체념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였고, 파피는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썰물 때마다 절벽 아래로 밀려 들어오는 파도의 패턴을 분석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자유 의지(free will)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꺼냅니다. 자유 의지란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선택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감옥이라는 극단적 구속 속에서도 파피는 끝내 그 의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ree Will).
드가와의 마지막 포옹 장면은 오래 남았습니다. 이곳에 남겠다는 드가와, 뗏목 하나로 절벽 아래 거센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파피.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비겁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드가 나름대로는 그것이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으니까요. 반면 파피는 그 어떤 가능성도 스스로 닫지 않겠다는 원칙 하나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결국 1969년, 파피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며 자유를 되찾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빠삐용 2017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네, 실존 인물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ère)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다만 일부 장면은 극적 효과를 위해 각색되었다는 점은 감안하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실화 기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독방 장면들이 훨씬 다르게 읽힙니다.
Q. 오리지널 1973년판과 비교했을 때 2017년 리메이크는 어떤가요?
A. 1973년판이 더 뛰어나다는 의견도 있고, 2017년판이 현대적 호흡으로 접근하기 쉽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독방 생활의 정신적 붕괴 과정은 오리지널이 더 깊게 파고들었고, 두 주인공의 우정 묘사는 리메이크가 더 따뜻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을 먼저 봐도 각자의 매력이 있습니다.
Q. 악마의 섬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요?
A. 실존합니다. 프랑스령 기아나 앞바다에 위치한 섬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실제 유형지로 사용되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의 피해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수감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는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Q. 넷플릭스에서 빠삐용 2017 볼 수 있나요?
A. 제가 본 시점에는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가능했습니다. 다만 OTT 라이선스는 수시로 변동되기 때문에, 현재 제공 여부는 직접 검색해서 확인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결론
빠삐용 2017은 클래식의 이름을 빌린 리메이크치고는 꽤 자기 몫을 해낸 영화입니다. 찰리 헤냄의 야성적인 집념과 라미 말렉 특유의 섬세함이 맞물리면서, 두 시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오리지널이 가진 극한의 고독감, 그러니까 독방에서 정신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더 길고 깊게 파고드는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다소 짧게 처리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죄"라는 메시지가 엔딩 이후에도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원작 소설이나 1973년 오리지널을 먼저 보지 않으셨다면, 2017년판으로 입문하시는 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