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고등학교 때 '꿈이 없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낙인이 될 줄 몰랐습니다. 영화 《산양들》을 보다가 그 시절 담임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성적표 숫자 하나로 학생을 분류하고, 수시 실적을 채우기 위한 관리 대상으로 줄을 세우던 그 교실 풍경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펼쳐지더군요.

입시 압박이라는 이름의 구조적 폭력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6등급'이라는 숫자가 사람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는 경험한 사람만 압니다. 영화 속 선생님은 꿈이 없는 학생들을 수시 지원 실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합니다. 여기서 수시(隨時 전형)란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없이 학생부, 봉사활동, 면접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스펙'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방식인데, 문제는 이 제도가 학생의 성장이 아닌 학교의 합격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영화적 과장이 아닙니다. 고2 때 진로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가서 들은 첫 마디가 "넌 이 성적으로 어디 지원할 거야"였습니다. 꿈이 뭔지는 묻지 않았죠. 교육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도구적 교육관이라고 부릅니다. 도구적 교육관이란 학생을 교육의 목적 자체로 보지 않고, 사회적·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뜻합니다. 영화는 이 냉혹한 논리를 교실 한 장면 안에 담담하게 압축해 넣습니다.
출처: 에듀넷·티-클리어(교육부 공식 교육 정보 포털)에 따르면, 고교 교육과정에서 진로 교육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성적 중심의 진학 지도가 여전히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 수시 전형: 학생부·봉사활동·면접 등을 반영해 수능 없이 선발하는 대입 제도
- 도구적 교육관: 학생을 목적이 아닌 성과 달성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
- 6등급 낙인: 9등급 체계에서 하위권으로 분류돼 진학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기준
권력욕이 진심을 삼켜버릴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학생회장 선거라는 소재가 이렇게까지 불편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거든요. 영화 속 찬영은 선거 홍보 영상을 빌미로 여자친구 부모님 식당을 찾아갑니다. 지역 상생 프로젝트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만든 건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한 폭로 영상이었습니다. 여자친구의 가족이 터전으로 삼은 공간을, 자신의 야욕을 채우는 정치적 자산으로 소비한 것이죠.
제 주변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 선거철만 되면 갑자기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생겼고,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지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영화에서 찬영의 행동은 이를 훨씬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계의 도구화, 즉 인간관계를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찬영은 여자친구조차 지지율 관리를 위해 숨겨야 할 변수로 취급하고, 그 관계에서 남은 건 '학생회장 여자친구'라는 텅 빈 타이틀뿐이었습니다.
더 불편했던 건, 찬영이 완전한 악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이기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 욕망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 선택이, 입시와 경쟁이 전부인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보였습니다. 성적 중심 사회가 인성의 왜곡을 용인하는 구조를 영화는 찬영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야산에서 피어난 연대의 의미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사육장이 아니라 야산이었습니다. 학교라는 제도권 공간에서 '관리 대상'으로 분류됐던 아이들이, 사육장이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대안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 야산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영화가 보여주는 핵심 개념이 바로 연대(連帶)입니다. 연대란 공동의 목표나 가치를 위해 개인이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책임을 나누는 관계를 뜻합니다. 단순한 친목이나 협동과는 다릅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친구에게 대표를 맡기는 장면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상대의 두려움을 약점으로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를 맡겨 용기로 바꿔주는 것—이게 진짜 연대가 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양의 발굽 비유는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산양의 발굽은 딱딱한 겉면과 말랑한 속살로 구성돼 있어 험한 절벽을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산양(Naemorhedus caudatus)은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한국 고유의 보호종으로, 험준한 암벽 지대에서 서식하며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이동합니다. 영화는 이 생태적 특성을 청소년의 생존 방식에 빗댑니다. 딱딱하게 버티되, 안으로는 충격을 흡수하는 말랑함—그 균형이 바로 이 소녀들이 시련을 이겨내는 방식입니다. 솔직히 그 비유 하나가 논문 한 편보다 더 선명하게 꽂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산양들》은 어떤 관객층에게 추천할 만한가요?
A. 제 경험상 입시와 학교 생활을 직접 겪어본 분들이라면 특히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청소년기를 지나온 성인 관객에게도 그 시절의 답답함과 연대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울림이 있습니다. 잔잔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건드리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더욱 맞을 것 같습니다.
Q. 학생회장 선거 장면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 아닌가요?
A. 찬영을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경쟁 구조가 만들어낸 인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저는 일방적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관계를 권력의 하위 개념으로 다루는 장면은 실제 학교 현장에서도 낯설지 않은 일입니다. 비판적 시각이라기보다 구조를 짚어내는 서사로 읽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Q. 산양의 발굽 비유가 실제 생태적 사실에 근거한 건가요?
A. 네, 실제로 산양의 발굽은 딱딱한 외부 조직과 충격을 흡수하는 부드러운 내부 패드로 이루어져 있어 험준한 암벽에서도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서도 산양의 이런 신체적 특징이 서식 환경 적응의 핵심으로 언급됩니다. 영화가 이 생태적 사실을 은유로 차용한 덕분에 비유 자체의 설득력이 훨씬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Q. 수시 전형이 왜 영화의 문제의식과 연결되나요?
A. 수시 전형은 본래 다양한 학생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현장에서는 오히려 봉사활동 시간이나 스펙을 쌓는 경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는 이 구조 속에서 '꿈 없음'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을 관리 대상으로 분류하는 모순을 꼬집습니다. 제도의 의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결론
영화 《산양들》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입시 압박, 권력욕,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연대—세 가지 키워드가 서로 맞물리며 청소년기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경쟁만이 전부인 구조 안에서 우리가 진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 질문은 스크린 밖에서도 계속 울립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한 번만 보고 끝내기엔 아깝습니다. 산양의 발굽처럼 단단하게 버티면서도 말랑하게 서로를 안아주는 그 방식이, 지금도 경쟁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꽤 유효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주변의 '관리 대상'으로 분류됐던 사람들을 한번 다시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그 사람들이 야산에서 어떤 아지트를 만들고 있는지, 우리가 놓쳤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