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처음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저는 이 영화를 가볍게 봤습니다. 모로코 사막에서 펼쳐지는 레이브 파티라니, 감각적인 비주얼과 음악이 중심인 영화겠거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사운드트랙상을 동시에 받은 올리베르 라시 감독의 <시라트>는, 제가 최근 몇 년 사이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레이브 사운드 디자인, 영화 전체를 지배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찾아본 게 사운드트랙이었습니다. 그만큼 사운드 디자인이 압도적이었거든요.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레이브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심장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이란 단순히 음악을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음향 효과·대사·음악 전체를 하나의 서사적 도구로 설계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시라트>는 이 사운드 디자인이 워낙 독창적이어서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상 후보에까지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특히 저를 사로잡은 건 음악이 장면의 감정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물이 죽어도, 절벽이 무너져도 레이브 비트는 그냥 흘러갑니다. 이 무심함이 오히려 훨씬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광활한 모로코 사막의 풍경과 맞물리면서,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하게 몽롱하고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제가 직접 그 레이브 파티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실제 레이브 파티 참가자들을 출연시킨 미장센(mise-en-scène) 선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배우, 조명, 배경, 소품—를 연출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배우가 아닌 실제 파티 참가자들을 기용함으로써 화면 속 혼돈과 자유로움이 '연기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줬고, 그 날것의 에너지가 사운드와 결합하면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각 경험처럼 다가왔습니다.
- 칸영화제 사운드트랙상 수상, 아카데미 음향상 후보 — 사운드가 이 영화의 핵심 언어
- 레이브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무심하게 흘러 더 강한 공포감을 유발
- 실제 레이브 파티 참가자 기용으로 '진짜'의 질감이 화면에 그대로 살아있음
갑작스럽고 허무한 죽음 연출, 왜 이렇게 서늘한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바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들 에스테반과 반려견 피파가 탄 차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 지뢰밭에서 두 명이 폭발로 사망하는 장면 모두 극적인 슬로모션도 없고, 음악이 고조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일어나고, 그냥 끝납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솔직히 첫 번째 죽음이 나왔을 때 저도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연출 방식이 오히려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 제목 '시라트(Sirat)'는 이슬람 신학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얇고 날카로운 다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시라트란 삶과 죽음, 구원과 지옥을 가르는 경계 그 자체를 상징하는 개념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그 경계를 넘어가는 연출은, 삶과 죽음이 거대한 운명이나 신의 뜻이 아닌 단순한 '우연'의 산물일 수 있다는 묵직한 통찰을 전합니다.
죽고 남은 루이스와 두 명의 히피족이 지뢰밭을 건너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겠다는 의지도, 죽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냥 걷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무기력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생존을 그린 영화는 흔치 않았습니다. 극적인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기대했다면 허탈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카타르시스란 원래 극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정화 작용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정화를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남는 건 텅 빈 감각과 묵직한 여운뿐입니다.
작가주의 영화로서의 비판적 시각, 히피 문화와 현대의 이기심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히피족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세계 3차 대전 소식이 들려오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다음 파티를 생각하고, 상실감에 빠진 루이스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환각제를 나눠 먹고 사막에서 레이브 파티를 엽니다.
처음에는 그 장면이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게 이 영화가 작가주의(auteur theory) 관점에서 날카롭게 던지는 비판이었습니다. 작가주의란 감독을 영화의 진정한 저자로 보고, 그 작품 전체에 일관된 주제 의식과 스타일이 흐른다고 보는 영화 비평 이론입니다(출처: British Film Institute). 올리베르 라시 감독은 히피족의 모습을 통해 외부 세계의 위기와 단절된 채 감각적 쾌락에 몰두하는 현대인의 이기적인 단면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바깥세상의 전쟁을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유토피아에 갇혀 있던 이들이 결국 그 바깥세상의 지뢰와 군대에 의해 파국을 맞이한다는 구조는, 모든 것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단순한 사막 생존 서사를 넘어 종교적·정치적 우화로 읽힐 수 있다고 봤습니다.
상실에 빠진 사람들이 음악에 의지하는 모습은 종교에 기대는 인간 본성과도 닮아있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그 어떤 구원도 선명하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불친절함이 싫은 관객도 분명 있겠지만, 제 경우엔 그 불친절함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라트 영화, OTT에서 볼 수 있나요?
A. 저는 OTT를 통해 접했고, 입소문을 타면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꽤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다만 플랫폼 서비스 여부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현재 이용 중인 플랫폼에서 직접 검색해 보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극장 상영 당시 찬란이라는 수입사가 배급했습니다.
Q. 시라트 영화 결말이 무슨 의미인가요?
A. 살고 싶은 의지도, 죽고 싶은 의지도 없이 지뢰밭을 건너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루이스와 히피족 둘이 현지인들의 기차에 올라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영화는 이 생존이 승리인지, 또 다른 표류인지 명확히 답하지 않습니다. '시라트(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넜다고 해서 구원이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Q. 시라트, 재미없다는 평도 많던데 그래도 볼 만한가요?
A. 기승전결이 뚜렷한 상업 영화를 기대한다면 솔직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초반 30분은 '이게 어디로 가는 거지?' 싶었습니다. 하지만 레이브 음악과 사막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분위기,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헤드폰을 끼고 보시길 권합니다.
Q. 칸영화제에서 어떤 상을 받았나요?
A.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사운드트랙상을 수상했고,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영화상 및 음향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특히 사운드트랙상 수상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인 레이브 사운드 디자인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결론
<시라트>는 친절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설명해 주지 않고, 극적으로 슬퍼하지도 않으며, 명확한 구원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계속 떠올린 이유는 바로 그 불친절함 때문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우연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 이 두 가지 통찰이 사막의 레이브 비트와 함께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레이브 음악을 좋아하거나, 정형화된 플롯 대신 감각과 여운으로 채워지는 영화를 찾는다면 한 번쯤 시간을 내볼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가능하면 좋은 이어폰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사운드 디자인이 이 영화의 절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