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업사이드(The Upside)》 기본 정보
개봉 연도: 2019년 (한국)
감독: 닐 버거
출연: 브라이언 크랜스턴, 케빈 하트, 니콜 키드먼
장르: 드라마, 코미디
원작: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2011)
서론: 영화를 보고 느껴진 소회
프랑스 원작 《언터처블: 1%의 우정》을 매우 인상 깊게 감상했기에,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리메이크 영화 《업사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습니다. 명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과 케빈 하트의 연기는 매력적이었지만, 원작이 지녔던 특유의 깊은 감동과 캐릭터 간의 대등한 유대감은 다소 퇴색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국적 상업 영화의 틀 속에서 유쾌함을 살리려 애썼으나, 수직적인 고용 관계와 물질적 해결책에 의존하는 서사 구조로 인해 진정한 인간적 교감보다는 '훈훈한 범작'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원작의 리메이크 서사 구조와 캐릭터의 깊이감 부족
프랑스의 대표 명작을 할리우드의 색채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본래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성공적인 리메이크가 되기 위해서는 원작의 뼈대를 가져오되 독창적인 감성과 현실적인 각색이 더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영화 《업사이드》는 이러한 리메이크 과정에서 원작의 매력을 온전히 살려내지 못하고 겉모습만 흉내 내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시작부터 카체이싱 장면을 통해 인물들의 유대를 조명하려는 구성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배경 설정 역시 미국적 현실에 맞추어 변주되었습니다. 원작의 인물이 이민자 청년이었던 것에 비해 본작에서는 전과자이자 아들과 아내를 둔 가장으로 바뀌었고, 전신마비 부호 필립 역시 교수에서 기업 컨설턴트로 재해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지닌 입체감이나 서사의 깊이는 오히려 원작보다 약화되었습니다. 필립을 연기한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과는 별개로, 캐릭터 자체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묘사되어 관객이 인물에게 온전히 공감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델을 고용하는 과정에서도 수평적인 태도가 마음을 움직였다는 일방적인 설정에만 의존할 뿐, 두 사람의 인간적인 끌림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합니다. 이는 제대로 된 리메이크작이 보여주어야 할 캐릭터 간의 긴장감과 케미스트리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결국 원작이 보여주었던 유머 속에 숨겨진 인류애적 따뜻함은 이번 리메이크 작품에서 가벼운 촌극 수준으로 퇴화해 버렸으며, 이는 원작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기는 리메이크의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상류층 풍자의 한계와 수직적 고용 관계의 기만
이 영화가 지닌 또 다른 아쉬운 점은 두 인물의 교가를 다루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현실 기만과 한계입니다. 가난한 하류층 인물이 부유한 상류층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며 성장한다는 구도는 표면적으로는 유쾌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위험한 현실 기만이 숨어 있습니다. 영화 중반부 델이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이 상류층 인사들에게 5만 달러라는 거액에 팔리는 에피소드는 예술계의 허세를 비판하는 풍자적 장치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역설적으로 주인공이 가진 삶의 궁극적인 가난과 고통을 부자의 돈을 통해 손쉽게 해결해 버리는 자본주의적 현실 기만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물질적 시혜를 통해 인물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식은 계층 간의 진정한 이해와 연대라는 본래의 주제의식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게다가 후반부 필립이 개인적인 데이트 실패와 감정적 좌절을 겪은 후, 이를 델과 비서 이본의 탓으로 돌리며 그들을 해고하는 전개는 인물들의 관계가 가진 밑바닥을 보여줍니다.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필립의 모습은 두 사람의 관계가 대등한 우정이 아닌, 돈으로 묶인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수직적 관계에 불과했음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됩니다. 감동적인 우정의 서사를 지향하면서도 결국 고용 논리와 자본의 위계에 종속되는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씁쓸함을 선사하며, 감동을 강요하기 위해 설정된 인위적 갈등 구조 속에서 자본주의적 현실 기만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합니다.
훈훈한 범작으로 남은 한계와 작품이 남긴 아쉬움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명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0점 만점에 4점 수준의 훈훈한 범작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턴과 케빈 하트, 니콜 키드먼이라는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이 참여해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노력했지만, 엉성한 서사 구조와 깊이 없는 관계 설정은 영화를 훈훈한 범작 이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습니다. 장애와 가난, 상류층과 하류층이라는 극단적인 대비 속에서 피어나는 기적 같은 우정은 진정한 인간 대 인간의 이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돈과 고용이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관계를 결말짓고 말았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극적인 계기나 심리적 교감보다는 억지스러운 해화화로 일관하여 관객이 깊은 울림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생략된 채 잔잔한 휴먼 드라마의 껍데기만 둘러쓴 모습은 전형적인 훈훈한 범작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미 검증된 뛰어난 원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더 퇴화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선택할 이유는 찾기 어렵습니다. 영화를 통해 단순한 킬링타임용 웃음 이상의 깊은 여운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보여준 훈훈한 범작으로서의 한계에 큰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