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후기 영상을 보다가 잠깐 멈춰 버렸거든요. '39년 동안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광고판 문구가 멸망해가는 세상 곳곳에 도배된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할 때, 그가 평생 품어온 기억과 내면의 우주도 함께 소멸한다는 이 영화의 철학적 전제는 개봉 전부터 제 머릿속을 꽤 오래 맴돌았습니다.

역순 구조가 만들어내는 수수께끼의 쾌감
《척의 일생》은 3막에서 시작해 1막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reverse chronology) 구조를 택합니다. 여기서 역순 서사란 결말에 해당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시간을 거꾸로 되짚으며 원인과 배경을 밝혀나가는 서술 방식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나 가스파 노에의 <되돌이킬 수 없는> 처럼 관객에게 익숙한 선형적 서사 대신, 조각난 진실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경험을 제공하지요.
제가 직접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자칫 난해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오히려 '척'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끊임없이 증폭시켜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이유도, 광고판 문구의 정체도 영화가 역방향으로 전개될수록 하나씩 해소됩니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감각이랄까요. 이 구조 덕분에 척이라는 평범한 회계사의 삶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탐정 게임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만 역순 서사를 두고 "일부러 난해하게 꾸민 작위적 구성"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경우에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역순 구조는 미학적 취향이 아니라 서사의 필연입니다. 척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시작해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흐름은, 인간의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마지막 모습이고, 한참 후에야 함께했던 시작을 떠올리잖아요. 영화는 그 감각을 고스란히 구현합니다.
- 역순 서사 구조: 결말에서 시작해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극대화
- 3막→2막→1막 역행 전개로 '척'의 정체를 수수께끼처럼 풀어나가는 구성
- 기억의 역방향성을 서사 구조 자체로 시각화한 연출 방식
- 스티븐 킹 원작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마이크 플래너건이 연출 (출처: IMDb)
정체성을 형성하는 우주적 서사의 무게
이 영화의 철학적 핵심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 미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개인의 존재와 경험이 그 자체로 의미의 원천이 된다는 사유 방식인데, 쉽게 말해 "내가 살아온 방식이 곧 내 우주를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척이 숨을 거둘수록 그가 살아온 세계가 물리적으로 붕괴하는 방식으로 이 명제를 시각화합니다. 개인의 죽음이 곧 하나의 우주의 소멸이라는 설정이 이토록 선명하게 표현된 작품은 제 경험상 흔치 않았습니다.
특히 잔상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평범한 회계사 척이 길거리 드러머의 연주에 맞춰 본능적으로 춤을 추는 대목입니다. 이성적으로만 살아왔을 것 같은 인물이 음악 앞에서 무장해제되고, 실연당한 낯선 여성과 잠깐 어우러지는 그 짧은 순간. 이 장면은 변곡점(inflection point)의 시각적 표현으로 읽힙니다. 변곡점이란 흐름이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를 뜻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억의 파편이 바로 이런 우연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영화는 메시지에만 치우쳐 서사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비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후반부로 갈수록 감상주의적 색채가 짙어지고, 감정을 설계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느낌이 옅게 깔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 존재의 서사성(narrativity), 즉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에 대해 이렇게 따뜻하고 선명하게 말을 건네는 영화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서사성이란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경험들을 엮어 하나의 일관된 자아 이미지를 형성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뜻합니다.
삶이 무기력하고 지칠 때 지나온 시간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 제 경험상 이건 진짜입니다. 그 감각을 영화 한 편이 잘 건드려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서사를 발견하는 행위는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자주 묻는 질문
Q. 《척의 일생》은 스티븐 킹 원작인가요?
A. 맞습니다.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집 《이프 잇 블리즈》에 수록된 단편이 원작이며, 공포 장르보다는 감성적인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도 "킹의 작품 중 가장 따뜻한 이야기"라는 평이 많은 편이라, 공포물을 기대하고 접근하면 예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
Q. 역순으로 전개된다는데,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요?
A. 역순 서사가 난해하다는 우려를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후기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훨씬 직관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구조보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척의 삶이 맞춰집니다. 단, 집중하지 않으면 시간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1막·2막·3막 구분을 미리 인지하고 보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Q.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가요?
A. 솔직히 말하면 갈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사적 긴장감이나 강렬한 사건 전개보다는 한 사람의 내면적 기억과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라, 자극적인 서사를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잔잔함을 넘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삶의 의미나 인간 존재에 대해 사유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깊은 울림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작품입니다.
Q. 춤 추는 장면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나요?
A. 이성적이고 평범한 회계사였던 척이 길거리 드러머의 연주에 맞춰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장면인데, 이 짧은 순간이 척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평생 단 한 번의 충동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빛나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오래 잔상에 남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결론
《척의 일생》은 아포칼립스(apocalypse), 즉 종말론적 세계 붕괴를 외피로 삼아 철저히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아포칼립스란 단순히 세상의 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가 드러나고 소멸하는 계시의 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 '거대한 무언가'는 바로 척이라는 한 사람의 우주입니다.
역순 구조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고, 후반부의 감상주의적 색채가 호불호를 가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작품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무심히 흘려보낸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우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만큼 따뜻하게 상기시켜준 작품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지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시기라면, 한 번쯤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