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스페인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이 정도 밀도가 있는 작품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주말 저녁 알고리즘에 이끌려 틀었다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작품, 입니다. 수직으로 뚫린 감옥 '홀'에서 위층이 먹다 남긴 음식만으로 버텨야 하는 극한의 생존 구조가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를 얼마나 정확하게 찌르는지, 보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디스토피아 설정 — 이 감옥, 구조 자체가 메시지입니다처음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최고급 식재료로 정성껏 조리된 요리들이 거대한 수직 플랫폼, 즉 자기부상 방식으로 층층이 내려가는 배식 장치에 올려집니다. 여기서 자기부상 플랫폼이란 전자기력으로 바닥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구조물을 뜻하는데, 영화 안에서..
넷플릭스를 켰다가 나의 마더(I Am Mother)를 보게 됐는데, 러닝타임 내내 등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자극적인 공포 장면 하나 없이 이렇게 오래 긴장감이 유지되는 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 했거든요. 인류 멸종 이후 로봇 손에 길러진 소녀 이야기인데, 보고 나서 며칠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줄거리와 연출: 저예산인데 왜 이렇게 완성도가 높을까영화는 인류 멸종 1일째부터 시작합니다. 고립된 지하 시설에서 로봇 '마더'가 혼자 깨어나 인간의 배아 세포를 꺼내 부화시키는 장면인데, 제가 직접 봤는데 첫 5분이 대사 없이 로봇의 움직임만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침묵이 분위기를 더 짓눌렀습니다.배아(embryo)란 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시작..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이 연출했다는 소식에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예매했는데, 극장을 나오고도 한참 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더군요. 소라 네오 감독의 첫 장편 《해피엔드》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다섯 친구의 우정과 균열을 차분하게 쌓아 올린 작품입니다.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영화였습니다.근미래 디스토피아 속 다문화 정체성의 충돌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낯선 장면이 나옵니다. 경찰이 길거리에서 특정 학생에게만 신분 검문을 요구하는 장면인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게 묘사돼서 처음엔 그냥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 학생이 바로 재일 한국인 4세인 코우였고, 저는 그 순간부터 이 영화가 단순한 청춘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통일 대한민국이 디스토피아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독립영화 《지느러미》는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더 스퀘어》와 《슬픔의 삼각형》을 제작한 필립 보베르가 참여한 작품입니다. 예고편의 기괴한 분위기에 이끌려 적은 상영관을 직접 찾아갔는데, 예상보다 훨씬 묵직한 것이 남았습니다.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영화가 설계한 세계는 꽤 구체적입니다. 배경은 통일된 대한민국이지만, 자유로운 민주국가의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북한 체제의 분위기가 짙게 깔린 채로, 애국 이데올로기(ideology)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특정 집단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내면화시키려는 가치 체계를 말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얼굴에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