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나오는 길에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보통 영화를 보고 나면 "재밌었다" 혹은 "별로였다" 둘 중 하나인데,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디거》는 그 어디에도 딱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석유 재벌의 위선과 자본 권력의 구조를 블랙코미디(Black Comedy) 형식으로 풀어낸 이 영화, 저는 관람 내내 감탄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블랙코미디가 해부하는 자본가의 심리구조회의 시간에 상사가 불편한 보고를 듣자마자 화제를 돌리는 장면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는 영화 초반 디거 록웰의 행동을 보면서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디거는 시추 현장의 균열 경고를 수십 통의 이메일로 받고도 "어디에 경고가 있냐"고 묻습니다. 정보를 못 받은 게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다.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집중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말 밤에 별생각 없이 OTT를 뒤적이다 평점에 끌려 튼 영화 한 편이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신혼 첫날밤이 생존 게임으로 돌변하는 영화 레디 오어 낫은 잔혹한 스릴러이면서도 계급과 가부장제를 날카롭게 비트는 블랙 코미디입니다. 기괴한 가문의 전통과 피투성이 웨딩드레스, 그리고 통쾌한 결말까지 — 제가 본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신혼 첫날밤이 살인 게임으로 — 설정의 배경과 맥락제가 직접 봤는데, 영화 초반부는 꽤 평범한 웨딩 로맨스처럼 흘러갑니다. 재벌가 토마스 가문으로 시집온 주인공 그레이스는 결혼식 후 시댁 식구들과 함께 오래된 저택에 모이고, 남편 알렉스는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신고식이 있다며 게임 참여를 권유합니다. "게임 정도야" 싶..
러닝타임 162분. 이 숫자를 보고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재생을 시작하자, 2시간 41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거의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대치가 높았는데, 공개 첫날 저녁 OTT에 접속해 보니 실시간 인기 순위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어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습니다.장르 균형 — 이 영화가 '꽉 찬 육각형'인 이유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떠올린 개념이 '멀티 장르 밸런스(Multi-Genre Balance)'입니다. 여기서 멀티 장르 밸런스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장르적 속성을 동시에 구현하되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압도하지 않는 구성력을 말합니다. 많은 영화들이 이걸 시도하다가 어느 한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