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실패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변요한이 한 스크린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보증수표라고 느꼈거든요. 살인범을 납치해 경주로 향한다는 설정까지 더해지니 기대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야, 캐스팅과 소재만 믿고 연출의 완성도를 너무 안이하게 봤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캐스팅은 완벽했는데, 장르 혼합이 발목을 잡았다《경주기행》의 줄거리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장르는 블랙 코미디였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 폭력, 범죄처럼 어둡고 불편한 소재를 역설적으로 웃음의 재료로 삼는 장르를 말합니다. 살인범을 납치해 가족 여행인 척 위장한다는 설정은 이 장르에 딱 맞는 구조였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고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라면 늘 비슷하다는 인상이 강해서, 주말 오후에 아무 기대 없이 OTT를 켰는데 어느 순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4층짜리 빌딩 한 채가 이야기 전체를 품는 구조라니, 직접 겪어보니 이게 단순한 공간 설정이 아니더군요. 영화감독 병수(권해효 분)가 딸 정수, 건물주 혜옥(이혜영 분)과 함께 논현동 빌딩을 층층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저는 이미 이 영화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빌딩이 곧 이야기다 — 시각화된 플롯 구조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을 조금이라도 본 분이라면 '차이와 반복'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차이와 반복이란, 비슷해 보이는 상황이나 대화가 미묘하게 어긋나며 반복되면서 의미가 생겨나는 홍상수 특유의 서사 방식입니다.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국내 최초 AI 장편 영화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충분히 영화를 볼 이유가 됐습니다. 변요한, 김강우, 양세종까지 믿고 보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 소식에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는데, 막상 불을 끄고 영화를 마주하니 그 기대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술적 실험이 곧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 영화가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AI 영화라는 타이틀, 그 배경과 맥락《중간계》는 장례식장에 모인 경찰, 여배우, 방송국 PD, 조직폭력배 등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들이 도달한 곳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계', 즉 환생을 기다리거나 저승행을 준비하는 전이 공간입니다. 여기서 사신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이야기의..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통일 대한민국이 디스토피아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독립영화 《지느러미》는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더 스퀘어》와 《슬픔의 삼각형》을 제작한 필립 보베르가 참여한 작품입니다. 예고편의 기괴한 분위기에 이끌려 적은 상영관을 직접 찾아갔는데, 예상보다 훨씬 묵직한 것이 남았습니다.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영화가 설계한 세계는 꽤 구체적입니다. 배경은 통일된 대한민국이지만, 자유로운 민주국가의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북한 체제의 분위기가 짙게 깔린 채로, 애국 이데올로기(ideology)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특정 집단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내면화시키려는 가치 체계를 말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얼굴에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