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76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무관심 지대, 관찰자 시점, 열화상 카메라) 홀로코스트 영화라면 당연히 수용소 내부의 참상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끝까지 그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습니다. 담장 바깥에서 꽃을 가꾸고 아이들과 수영하는 나치 장교 가족의 일상만 90분 내내 담아냅니다. 퇴근 후 OTT로 틀었다가, 영화가 끝난 뒤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이토록 깊은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무관심 지대 —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충돌영화의 원제 'Zone of Interest'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 SS 대원들의 거주 구역을 뜻하는 나치의 공식 행정 용어입니다. 여기서 'Zone of Interest'란 단순한 지리적 구역이 아니라, 학살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생.. 2026. 8. 25. 영화 <본즈 앤 올> (정체성, 소유욕, 완전한 합일) 식인이라는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가 있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2022)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파격적인 소재의 호러물이겠거니 했는데, 지난 주말 OTT로 다시 틀었다가 결말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식인이라는 금기를 다루면서도 끝내 사랑 이야기로 귀결되는 이 영화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질문을 던진다는 걸 그때 다시 확인했습니다.정체성의 길항 작용 — 괴물과 고독 사이에서이 영화를 단순한 공포물로 오해하다가 놓치게 되는 핵심이 바로 주인공 매런의 내면 구조입니다. 매런은 '나는 괴물이다'라는 인식과 '나는 혼자다'라는 인식을 동시에 안고 삽니다. 여기서 길항 작용(拮抗 作用)이란 두 힘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 2026. 8. 24.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미장센, 은유구조, 상실치유)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고 "예쁘긴 한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느꼈다면, 그건 감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특히 다층적인 서사 구조로 설계된 작품이라, 저도 처음엔 화면만 멍하니 쫓다가 끝났습니다. OTT로 뒤늦게 챙겨 봤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평론가의 해설을 찾아 들은 뒤 다시 떠올려보니, 영화 속 와플 한 조각과 핵폭발 장면이 왜 나란히 놓였는지가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이 글은 그 해독 과정을 저 방식대로 정리한 기록입니다.미장센이 아름다울수록 서사가 안 읽히는 이유〈애스터로이드 시티〉를 처음 틀었을 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와, 예쁘다"였습니다. 파스텔 계열의 채도 높은 색감, 화면을 수직·수평으로 쪼개는 기하학적 대칭 구도, 마치 인형.. 2026. 8. 24. 영화 <아이리시맨> (악의 평범성, 노동조합, 구원) 주말에 불 끄고 혼자 3시간 반짜리 영화를 정주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걸 했고,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은 마피아 누와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선택과 침묵이 한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가장 차갑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노동조합과 마피아의 유착, 역사가 배경이 된 이유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피아 영화니까 당연히 총격전과 화려한 폭력이 중심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스콜세지가 공들여 펼쳐놓은 건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미국 노동운동사였습니다.영화의 핵심 실존 인물인 지미 호파는 국제운송노조(IBT), 즉 Teamsters의 위원장이었습니다. 여기서 IBT란 미국 전역의.. 2026. 8. 24.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