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개봉한 한국 심리 스릴러 영화 는 여섯 명의 탐험대원이 남극의 '도달 불능점(Pole of Inaccessibility)'을 목표로 전진하다 하나씩 무너져 가는 이야기입니다. 상영관 타이밍을 놓친 채 거의 20년을 묵혀두다 최근 OTT로 처음 봤는데, 첫 장면부터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이렇게 강렬할 줄은 몰랐습니다.줄거리 — 80년 전 실종 탐험대와 겹쳐지는 섬뜩한 여정영화는 탐험 21일째, 대원들이 눈 속에 파묻힌 낡은 깃발과 기록을 발굴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속도를 확 끌어올립니다. 80년 전 남극에서 실종된 영국 탐험대의 기록이었는데, 그 대원 수가 정확히 여섯 명이었습니다. 지금 이 팀과 똑같이. 직접 보면서도 "설마 이게 복선이겠어?" 싶었는데, 그 이후로 장면마다 그 우연이 머릿속..
공포영화를 보고 나서 무서웠다는 말 대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를 다 보고 나서 딱 그 상태였습니다. 거실 불을 다시 켜고도 한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무서워서가 아니라 멍해서였습니다. 장르는 공포인데, 남은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무력감이었습니다.해결되지 않는 이야기가 왜 더 무겁게 남는가요즘 날이 워낙 더워서 밖에 나가기도 싫고, OTT 목록만 멍하니 훑다가 오래 미뤄뒀던 이 영화를 재생했습니다. 유전이나 미드소마를 꽤 인상 깊게 봤던 터라,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쌓이고 터지는 경험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전작들과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전작들은 이른바 '해결의 플롯' 구조를 따릅니다. 여기서 해결의 플롯이란..
공포 영화라고 하면 으레 피가 튀고 괴물이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사실 이 장르를 썩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1997년작 '큐어'를 보고 나서 그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자극이 아니라,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정적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옥죌 수 있다는 걸 제가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세기말의 공포, '큐어'가 탄생한 맥락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사회 전반에 무력감과 불안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분위기를 정면으로 흡수한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슬래셔 영화(Slasher Film)라 하면 단일 살인마가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슬래셔 영화란 특정 살인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