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운석 재난 영화라길래 CG 볼거리 위주일 거라 짐작했는데, 막상 화면을 채운 건 불타는 도시가 아니라 공군 기지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 《그린랜드》, 스펙터클보다 인간을 더 무섭게 그린 작품입니다.선별 생존 시스템이 드러낸 것들영화에서 가장 서늘했던 장면은 운석 충돌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공군 기지 입구에서 직종에 따라 탑승 여부가 결정되는 장면, 제가 직접 봤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재난 앞에서도 사회적 쓸모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은 밀려나는 구조, 이게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영화 속 시스템은 이른바 선별적 생존(Selective Survival) 구조입니다. 여기서 선별적 생존이란 사회 재건에 필요하다고 판단된 직군과 그 직계 가족에게만 대피 자원을 ..
뭔가 시원하게 터지는 걸 보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어서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걸린 영화가 있었습니다. 2023년 공개된 《하트 오브 스톤》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큰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그런데 알프스 카지노 오프닝 시퀀스 5분 만에 리모컨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비밀 조직 차터의 최정예 요원 레이철 스톤이 신참 기술 요원 행세를 하며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이야기, 과연 단순한 여성판 007에 그치는 걸까요, 아니면 그 이상이 있을까요? 신참 행세 뒤에 감춰진 것, 액션과 설정의 매력첩보 영화를 꽤 봐온 저도 이 영화의 초반 구조는 제법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MI6 팀에 어설픈 기술 요원으로 섞여 들어간 스톤이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압도적인 전투력을 드러내는 방식은, 관객이 캐릭터를 '재발견'하는 쾌감을..
보고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실사 영화 '룩백'입니다. 후지모토 타츠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창작의 기쁨과 좌절,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담아낸 작품인데, 저는 보는 내내 한 번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해졌습니다.창작 충동이란 무엇인가 — 경쟁심이 열정이 되는 순간혹시 이런 경험 있으십니까.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누군가가 그 자리를 순식간에 가져가버리는 그 순간. 저는 학창 시절 그 감각이 얼마나 사람을 움직이는지 몸으로 알고 있어서, 후지노가 쿄모토의 그림을 처음 마주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영화 속 후지노는 쿄모토의 등장 하나만으로 자신의 세계관이 통째로 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기술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면 과연 그게 위로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상처일까요.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실낙원'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질문이 바로 이겁니다. 13명의 아이가 버스째 사라졌다가 9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연쇄 살인범의 몽타주와 얼굴이 겹친다는 설정은, 예고편만으로도 이미 심장 어딘가를 서늘하게 긁어놓았습니다.AI가 메운 상실의 자리 — '낙원의 아이들'이라는 마취제영화 속 AI 기업이 개발한 '낙원의 아이들'은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VR) 기반의 애도 보조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서 VR 기반 애도 보조란, 고인이나 실종자의 행동 데이터를 학습시킨 AI 아바타와 유족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