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4 영화 <퍼스트 카우> (켈리 라이카트, 네오 웨스턴, 우정) 주말 저녁 OTT 앱을 켜고 뭘 볼지 고민하다가 결국 찜 목록만 훑다 끄는 날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날이 꽤 많았는데, 그 찜 목록 맨 위에 오래 머물러 있던 작품이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였습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2021년 최고의 외국 영화로 꼽은 작품이라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막상 틀고 나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고, 끝나고 나서도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켈리 라이카트가 다시 쓴 서부극의 시공간영화의 배경은 1820년대 오리건 주입니다. 미국이 지금의 영토를 아직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던 시절, 컬럼비아 강 유역의 원시림이 배경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시대로 바로 뛰어들지 않습니다. 먼저 현대의 강변에서 한 여성이 개와 함께 산책하다 나란히 묻힌 두 개의 해골.. 2026. 8. 30. 영화 <파벨만스> (미학적 통제, 지평선, 자전적 영화) 솔직히 저는 를 그냥 스필버그의 회고담 정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극장 개봉 때 놓쳤던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OTT에서 뒤늦게 틀었다가 두 시간 반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었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행위가 삶의 비극을 어떻게 프레임 안에 가두는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게 꽂혔습니다.미학적 통제 — 카메라는 비극을 어떻게 길들이는가영화 초반, 여섯 살 세미는 에서 기차 충돌 장면을 보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장난감 기차를 직접 충돌시키고 아버지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엄마 미치가 말합니다. "한 번만 부수고 영화로 찍어두면, 더 이상 망가뜨릴 필요도 없고 무섭지도 않을.. 2026. 8. 27.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미장센, 은유구조, 상실치유)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고 "예쁘긴 한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느꼈다면, 그건 감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특히 다층적인 서사 구조로 설계된 작품이라, 저도 처음엔 화면만 멍하니 쫓다가 끝났습니다. OTT로 뒤늦게 챙겨 봤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평론가의 해설을 찾아 들은 뒤 다시 떠올려보니, 영화 속 와플 한 조각과 핵폭발 장면이 왜 나란히 놓였는지가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이 글은 그 해독 과정을 저 방식대로 정리한 기록입니다.미장센이 아름다울수록 서사가 안 읽히는 이유〈애스터로이드 시티〉를 처음 틀었을 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와, 예쁘다"였습니다. 파스텔 계열의 채도 높은 색감, 화면을 수직·수평으로 쪼개는 기하학적 대칭 구도, 마치 인형.. 2026. 8. 24.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장례식, 욕망, 필리프 신부) 이동진 평론가가 5점 만점을 준 프랑스 영화가 있습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입니다. 솔직히 처음 그 평점을 봤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알랭 기로디라는 이름 자체가 워낙 난해함과 동의어로 통하다 보니, 제가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재생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금방 알게 됐습니다.장례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구조의 의미일반적으로 프랑스 예술 영화라 하면 서사보다 형식이 앞서는 난해한 작품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도 그랬고요. 그런데 는 달랐습니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해서 첫 장면부터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갔습니다.영화는 순환 서사(circular narrative) 구조를 취합니다. 순환 서사란 작품의 시작점과 끝점이 동일한 사건이나 장면.. 2026. 8. 2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