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받은 영화가 이렇게까지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저는 솔직히 예상 못 했습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Amour, 2012)'는 음악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사랑 영화를 기대하셨다면, 그 기대는 초반 10분 안에 무너집니다.배경: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는 방식영화는 시작부터 결말을 보여줍니다. 소방관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한 노년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이 첫 화면입니다. 저는 이 도입부를 보면서 '아, 이 감독은 관객에게 위안을 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라고 직감했습니다.이후 영화는 그 시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천천히, 아주 집요하게 되짚어 나갑니다. 파리에 사는 음악가 출신 ..
착한 행동을 했는데 오히려 더 궁지에 몰린다면, 그게 과연 그 사람 잘못일까요? 주말에 OTT를 뒤적이다가 아시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 '어떤 영웅'을 봤는데, 보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선행을 했음에도 증거를 대야 하고, 결국 그 증거를 만들다가 무너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씁쓸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 영화였습니다.윤리적 딜레마: 선행이 어떻게 함정이 되는가영화의 시작은 꽤 단순합니다. 빚을 갚지 못해 수감된 라힘이 귀휴 기간 동안 여자친구가 주운 금화 17개로 빚을 청산하려 했지만, 금 시세가 절반 가까이 폭락하면서 계획이 틀어지고, 결국 금화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잔잔한 감동 실화입니다.그런데 이게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교도소 측이 이..
솔직히 저는 1981년작이라는 말을 듣고 고전 특유의 정적이고 관조적인 영화를 상상했습니다. 그 선입견이 얼마나 크게 빗나갔는지, 첫 장면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았습니다. 안제이 줄라브스키 감독의 '포제션(Possession)'은 뤼미에르 형제 시절부터 이어져 온 "영화는 현실을 담는 그릇"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부수는 작품입니다. 리마스터링을 거쳐 국내에 처음으로 정식 개봉한 지금, 이 영화가 왜 40년 넘게 시네필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됐는지 데이터와 장면 분석을 통해 짚어보겠습니다.이자벨 아자니와 칸영화제 — 연기가 아니라 소진이었다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한 건 OTT 화면이었는데, 화질이 달라진 리마스터링 버전임에도 이자벨 아자니의 얼굴 클로즈업이 주는 압박감은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배우가 연기..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한 역대 아시아 영화 100선 7위. 숫자만 봐도 묵직한데, 저는 이 영화를 OTT로 틀기까지 꽤 오래 망설였습니다. 17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발목을 잡았거든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 느낀 건 딱 하나였습니다. 왜 이걸 이제야 봤나, 싶은 후회.양양의 시선 — 보지 못하는 것을 찍는 아이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장면은 화려한 도시 풍경도, 극적인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막내 양양이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뒷모습만 찍어 다니는 장면이었습니다.양양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앞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신의 반쪽을 돌려주겠다는 발상입니다. 초등학생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운 말이죠.이 장면을 두고 프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