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OTT 앱을 한참 뒤적이다가 결국 예전부터 찜만 해두었던 영화를 틀었습니다. 애프터 양(After Yang, 2021)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그냥 잔잔한 SF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혼자 그 여운을 한참 씹었습니다. 상실과 기억,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렇게 조용하게 건드리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가족 결속: 아버지가 아닌 로봇이 보호자였다영화 초반, 가족이 함께 댄스 경연 대회에 출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엔 그냥 미래 배경의 귀여운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위의 네 사람, 아니 세 사람과 한 안드로이드는 겉으로는 같은 팀처럼 보이지만 ..
솔직히 저는 를 그냥 스필버그의 회고담 정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극장 개봉 때 놓쳤던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OTT에서 뒤늦게 틀었다가 두 시간 반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었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행위가 삶의 비극을 어떻게 프레임 안에 가두는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게 꽂혔습니다.미학적 통제 — 카메라는 비극을 어떻게 길들이는가영화 초반, 여섯 살 세미는 에서 기차 충돌 장면을 보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장난감 기차를 직접 충돌시키고 아버지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엄마 미치가 말합니다. "한 번만 부수고 영화로 찍어두면, 더 이상 망가뜨릴 필요도 없고 무섭지도 않을..
주말에 별 생각 없이 OTT를 뒤지다가 오래 찜해두고 미뤄온 영화를 드디어 틀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였는데, 잔잔한 아트하우스 영화겠거니 하고 소파에 느슨하게 기댔다가 허리를 세우게 됐습니다. 주민 설명회 장면에서부터 이미 예상을 빗나갔고, 엔딩은 제가 한동안 화면 앞에서 멍하니 있게 만들었습니다. 시각적 상징과 서사 구조를 꼼꼼히 뜯어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정리해 봤습니다.하마구치의 연출: 일상을 서스펜스로 끌어올리는 방식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느꼈던 그 결대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느리고 섬세하되, 잔잔한 감독. 그런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작부터 다른 질감이었습니다. 장작을 패..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야시장 골목, 싱글맘, 왼손잡이 아이라는 소재만 보고 무거운 신파물을 각오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쯤 지나자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빈곤과 편견이라는 날 선 소재를 다루면서도 끝내 따뜻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아이폰 한 대로 포착한 타이베이의 골목과 야시장이 어떻게 스크린을 이렇게까지 살아 숨 쉬게 만드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이해했습니다.세 모녀 서사 — 지방에서 타이베이까지, 이 가족이 특별한 이유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사람들, 배우 맞아?"라는 의구심이었습니다. 지방에서 타이베이로 상경한 싱글맘,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뛰는 큰딸, 그리고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할아버지와 갈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