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37 <큐어> (세기말 공포, 미장센, 심리전) 공포 영화라고 하면 으레 피가 튀고 괴물이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사실 이 장르를 썩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1997년작 '큐어'를 보고 나서 그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자극이 아니라,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정적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옥죌 수 있다는 걸 제가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세기말의 공포, '큐어'가 탄생한 맥락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사회 전반에 무력감과 불안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분위기를 정면으로 흡수한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슬래셔 영화(Slasher Film)라 하면 단일 살인마가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슬래셔 영화란 특정 살인마가.. 2026. 8. 12. <파리의 사생활> (조디 포스터, 전생, 성장영화) 스릴러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면서 나온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파리의 사생활'을 씨네토크까지 챙겨 보고 온 날,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장르 영화가 아니었구나"였습니다. 조디 포스터의 프랑스어 연기와 내면 탐구 서사가 맞물리며 예상과 전혀 다른 여운을 남긴 작품, 직접 겪어보니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조디 포스터, 왜 이 영화를 골랐을까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보다 배우가 왜 그 작품을 선택했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파리의 사생활'이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제가 씨네토크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조디 포스터는 무려 14세 때부터 프랑스 학교를 다니며 불어를 익혔고, 본인 영화들을 직접 프랑스어로 더빙해 왔다고 합니다. 단순히 외국어를 할 줄 아는 .. 2026. 8. 11. <토이 스토리 5> 리뷰 (호모 루덴스, 얼굴 없는 연결, 이별) 솔직히 저는 토이 스토리 5가 그냥 향수를 자극하는 속편 정도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픽사가 이번에 건드린 건 단순히 장난감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제 아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아이의 손에 태블릿을 쥐여준 날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호모 루덴스, 그리고 달라진 놀이의 풍경일반적으로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장난감의 감정을 다룬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5편을 보면서 느낀 건 좀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역사학자 요한 호이진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호모 루덴스란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며, 인간의 문화 자체가 놀이에서 비롯되었.. 2026. 8. 8. <마티 슈프림> (아메리칸드림, 계급구조, 자아회복) 탁구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1950년대 미국의 반유대주의와 자본주의 착취 구조를 정면으로 해부합니다. 처음엔 스포츠 영화라고 가볍게 앉았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제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종류의 작품입니다. 1950년대 아메리칸드림, 그 뒷면은 무엇이었을까《마티 슈프림》의 시대 배경인 1950년대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기회의 나라를 표방했습니다. 전후 경제 호황 속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의 서사가 전국을 뒤덮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메리칸드림이란 단순한 물질적 성공의 신화가 아니라, 출신과 배경에 상관없이 능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 나라 특유의 이념적 약속을 뜻합니다.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면.. 2026. 8. 8. 이전 1 ···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