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딱히 볼 게 없어서 OTT를 뒤지다가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데자뷰(Deja Vu, 2006)》를 틀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2006년작 올드 영화라 큰 기대 없이 누워서 봤는데, 크루즈 폭발 테러 추적극에 웜홀 기반 시공간 관찰 기술까지 얹히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더라고요.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 SF적 상상력이 제법 탄탄하게 박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크루즈 폭발 테러추적, 그리고 첫 단서의 무게영화는 뉴올리언스 마디 그라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수백 명을 태운 크루즈 선박이 항구를 막 떠나려는 순간, 번호판도 없고 열쇠가 꽂힌 채 잠겨 있는 의문의 트럭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50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하죠. 제가 이 오프닝 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발자국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멀고도 가까운》의 주인공 주노가 재개발 구역의 낡은 바(Bar)를 지키는 이유는 딱 하나, 죽은 연인이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설정 하나만으로 이미 영화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먹먹함이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거든요.고립 — 멈춰버린 공간이 말하는 것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배우의 연기나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재개발 구역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주노의 바, 그 공간 자체였습니다.영화는 이 한정된 공간을 단순한 배경으로 쓰지 않습니다. 심리적 밀폐 공간(Enclosed Space)으로 활용하는데, 쉽게 말해 주인공의 억압된 내면을 물리적 장소로 가시..
주말 저녁, OTT 화면을 멍하니 스크롤하다 멈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렇게 일본 영화 을 틀었습니다. '횡령 이야기겠지' 싶었는데, 재생 버튼을 누른 지 10분도 안 돼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단순한 범죄물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가장 내밀한 균열을 파고드는 작품이었거든요.일탈의 시작 — 1만 엔짜리 균열이 만든 파국1990년대 초 일본을 배경으로, 성실한 은행원 주인공이 거액의 횡령에 빠져드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2015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출처: 일본 아카데미상 공식 사이트). 주연을 맡은 미야자와 리에는 10대 시절 화보집과 파격적인 약혼·파혼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배우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연기력으로 정면 승부하는 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바꿔 앉..
제가 별 기대 없이 주말 저녁 OTT를 뒤적이다 1992년작 사랑의 행로를 틀었는데, 첫 장면부터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그만 소파에 고정되어버렸습니다. 재즈, 형제의 균열, 그리고 끝내 완성되지 못할 것 같던 로맨스가 한 화면 안에 담겨 있는 영화입니다. 감각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진짜 같은 케미스트리가 만든 이 작품, 단순한 분위기 영화로만 보기엔 꽤 따져볼 구석이 많습니다.재즈 영화로서의 완성도, 그리고 숨겨진 서사적 구조이 영화를 단순히 "재즈 배경의 러브스토리"라고 보면 절반만 본 겁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 눈길을 끈 건 음악 자체가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대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시애틀 호텔 무대에서 잭 베이커(제프 브리지스)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들은 즉흥 연주, 즉 임프로비제이션..